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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조리명장 6人의 스페셜 인터뷰
양승열(목포) 님의 글입니다.
2013-06-02 14:50:11, 조회 : 5,373, 추천 : 32



수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오로지 요리만을 위해 한 길을 걸어온 이들이 있다.
묵묵하게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우리나라 식품외식산업의 뿌리가 되고 있는 그들은 오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조리명장으로 선정됐다. 국내에 6명 뿐인 조리명장들을 만나 그들의 조리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 한국관광대학 호텔조리과 한춘섭 교수 ★
-세계의 외식 시장은 이제 소스 전쟁 시대-
1970년 조리가 좋아서 무작정 시작한 조리인생이 어느덧 40년이 됐고, 그렇게 꾸준히 주어진 일에 매진하다가 대한민국 조리명장 1호가 된지도 10년에 이른 한춘섭 교수. 양식 요리로 조리인생을 시작한 그이지만 한식에 그 누구보다 애착을 가진 요리장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양식에서 배운 선구안을 바탕으로 일찌감치 한식의 세계화를 주창하고 몸소 실천해온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조리명장이다.

순수 한국 소스가 한식 세계화의 밑거름
“처음 경양식 업소 주방에서 무작정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조리사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았고 괄시 역시 큰 시기였습니다. 지나친 위계질서와 기득권에 휘둘리면서 어깨 너머로 조리를 배웠지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지금 교수라는 직책을 달고 있는 이유가 바로 나 자신이 배우고 터득한 노하우를 더 많은 후배들에게 전수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관광대학 호텔조리과 사무실에서 만난 대한민국 조리명장 1호 한춘섭 교수는 그렇게 40년 전을 회상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양식으로 조리인생을 시작한 한 교수는 이내 한식에 관심을 두고 조리인생 10년이 지난 1980년부터 한국음식의 세계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지나치게 앞선 시각 때문에 업계로부터 큰 반박을 받았다. 한식 세계화를 위해 조리법을 간소화해야 하며, 한식 소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한 교수가 생각하는 한식의 세계화는 ‘순수 한국 소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된장이나 고추장처럼 한식을 만들 수 있는 소스를 개발해 전 세계 사람들이 간편하게 한식을 조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한식의 세계화라는 것. 이를 위해 한 교수는 3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왔으며, 수백 가지의 순수 한국 소스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한 교수는 “이제 세계의 외식 시장은 소스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면서 “중국의 소스 업체 이금기가 전 세계를 제패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한식 소스를 전문으로 개발하고 생산해 세계의 소스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렌드에 맞춘 변화가 새로운 역사가 된다
순수 한국 소스에는 ‘전통을 기반으로 한 현지화 전략’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기본적인 한식의 방식이나 문화 등은 유지를 하되 조리법 간소화 등 현지의 사정에 맞춰 변형을 해야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는 것. 한 교수는 “조리법이 간단하면 전 세계인 누구나 사용할 것”이라며 “역사와 전통은 현 시대에 맞게 만들어가는 것이며 트렌드에 맞춰 변하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역사와 전통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순수 한국 소스를 통해 조리법을 간소화하면 소스 비율에 따라 맛의 표준화가 가능하다. 한식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인 재료와 셰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점을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누가 만들어도 비율에 따라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는 것. 또 한식의 소스화는 모든 메뉴를 그 때 그 때 즉석에서 만들 수 있다는 강점을 준다. 일반적으로 한식은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서 반나절 혹은 한나절을 사용하는데 이런 시스템에 대한 서양인들의 거부감 역시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일본의 기코만간장, 미소시루는 알아도 우리의 된장, 간장은 모릅니다. 중식은 이제 전 세계인 70%가 먹어봤을 만큼 세계적 음식이 됐습니다. 소스를 통한 현지화를 이뤘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미국, 한국, 중국에서 서로 음식이 다르지 않습니까. 오랜 시간 동안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 그 어느 연구소보다 더 많이, 더 깊이 연구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전통을 배우고 현대인에 걸맞게 개발하는 것이 진정한 한식의 세계화입니다.”


★ 신흥대학 호텔조리과 박병학 교수 ★
-몰입할 수 있는 열정이 명장을 만든다-
20여 년 이상을 한 가지의 일에 몰두한다는 것은 요새 들어 더욱 어렵고 대단한 일이 되고 있다.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이 곳 저 곳을 방황하는 철새 같은 직장인들에게 묵묵하게 자신의 일에만 몰입하는 사람들의 열정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느껴질 것이다. 20여 년을 한결같은 열정으로 자신만의 역사를 그려낸 조리명장 박병학 교수를 만나봤다.

열정이 곧 미래의 자신
몰입할 수 있는 열정. 조리명장 2호 박병학 교수를 한 마디로 표현했을 때 떠오르는 말이다. 어느 누구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 또 그와 같은 상황에 불평 없이 일식의 대가로, 한국을 대표하는 조리명장으로서 명성을 갖게 된 데에는 지치지 않는 열정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그가 음식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다. 14살부터 접시를 닦고, 조리를 위한 연탄불을 지펴가며 주방과 친해진 것. 당시 그의 꿈은 요리사가 아닌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서류가방을 든 회사원이었지만, 열악했던 환경 탓에 생계를 위해 일식당에 취직하게 됐다고 한다. 주방의 고된 업무는 그가 군대를 가기 전까지 계속 되었고, 전역 후에도 음식과의 인연은 이어졌다. 당시 남대문 근처에 위치한 도쿄 호텔의 일식당 근무를 시작으로 신라호텔, 롯데호텔에서 요리사로서의 경력을 쌓는 한편 중,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 학사, 경희대학교 식품가공학 석사, 세종대학교 조리외식학 박사까지 만학에 열정을 쏟았다. 드라마 주인공과 같은 버라이어티한 요리사의 삶을 걸어온 그는 현재 꿈 많은 대학생들의 스승이 되어 그들의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멘토가 되어주고 있다.
“학생들에게 뭐든지 즐겨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학업이든, 놀이든 최선을 다하고 즐길 줄 알아야 학교 밖 사회에 나가서도 전문가로서 발돋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학생 때부터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강한 추진력을 가져야 합니다.”

한식의 가치를 표출하는 방법 모색 중요
한식이 장수 음식, 건강 음식으로서 주목을 받고 있는 요즘 이 같은 흐름에 맞춰 한식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완되어야 할 점들이 많다. 박병학 교수는 손이 많이 가는, 즉 인적자원이 많이 드는 한식의 단점을 보완하고, 담음새 및 상차림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그릇은 음식의 가치를 높여주는 옷과 같습니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사람의 이미지도 달라지듯이 음식 역시 어떠한 그릇에 담아내느냐에 따라서 이미지, 가치 등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죠. 일식에서는 다양한 소재를 식기로 활용해 음식의 멋을 더하는데, 한식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해 담음새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나뭇잎 등 자연소재를 활용하거나 새로운 디자인의 그릇 등을 음식과 접목시키는 것이죠.”
이에 더해 박병학 교수는 음식문화가 글로벌화에 발맞춰 ‘탈정형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식, 일식, 양식 등 국가별 음식 문화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보다 진보하기 위한 개방적인 태도가 외식문화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식의 세계화가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진정한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는 업종을 불문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일례로 한식과 일식의 좋은 면을 골라 접목시킴으로써 단순히 요리를 넘어 예술 작품으로서 세계에 한식을 알리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 청운대학교 호텔조리식당경영학과 이상정 교수 ★
-호텔의 꽃 총지배인을 꿈꾼다-
1968년 갓 중학교를 졸업한 산골짝 소년이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길로 그는 경양식집에서 접시닦기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는 대한민국 조리명장 3호이자 대학교수가 되었다. 대한민국 조리명장 이상정. 겉으로 드러난 부드럽고 유연함 속에 강인한 결단력과 추진력을 숨기고 있는 그는 현재 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꿈과 희망을 실어주고 있다.

의지와 집념으로 접시닦이에서 교수가 되다
조리사의 길에 들어선 이후 조리명장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는 남모르는 의지로 목표를 세우고 이뤘으며, 이제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의지와 집념’을 지닌 명장이다. 조리사로서의 첫 발은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진 후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경양식집에 취직을 하면서부터다.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돈가스, 비후가스, 스테이크… 깡촌 출신인 그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1년이 지난 후 집안의 장손인 그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다시 시골로 내려가 농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한다. 그러나 한 번 맛 본 요리의 세계는 그를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했고, 결국 다시 서울로 상경했다. 호텔 주방과는 달리 당시 경양식집은 주방장이 자주 바뀌어 그에게도 음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던 중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군대를 다녀온 후 1976년 프라자호텔에 입사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그의 요리인생이 펼쳐졌다.
말단으로 입사한 호텔주방은 이제껏 있었던 경양식집과는 천지차이였다. 모는 메뉴가 불어와 영어였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기 위해 이태원으로 이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하면서 외국 셰프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남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국내 특급호텔들을 거치며 경력을 쌓은 그는 또 하나의 도전장을 내밀었다. 2004년 대학교수로 후진양성을 시작한 것. 이를 두고 당시 조선일보에서는 ‘접시닦이 요리사가 대학교수가 되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는 자만이 성취한다
이상정 교수는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조리를 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픈 말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준비하고 끊임없이 도전해야 만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자신이 외국어 공부에 힘을 쏟고 만학의 나이에 방송통신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는 등 끊임없이 꿈을 향해 노력해 이 자리까지 왔기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002년 3번째로 대한민국 조리명장의 반열에 오른 이상정 명장. 그때의 소회를 물으니 “조리인으로서 인정을 해주고 존중을 해 주는 것 같아 감격스럽기도 했지만 어깨가 무거웠다”고 말한다. 정부에서 명장으로 선정했을 때에는 대한민국의 식문화를 올바르게 이끌고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며 더불어 사회공헌활동도 많이 하라는 뜻이 아니겠냐는 것. 이를 잘 알기에 이상정 명장은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찾아가 도움을 주고 후배들을 두루 보살핀다.
호텔의 최고 셰프를 거쳐 대학교수가 된 그에게 또 다른 꿈이 있을까 궁금했다. 당연히 항상 도전하고 목표를 향해 의지를 불사르는 그에게는 꼭 이루고픈 꿈이 있었다. 바로 호텔의 총지배인이 되는 것.
이를 위해 현장감을 잃지 않으려고 현재 예술의 전당 내 ‘트랭블루’라는 뷔페 레스토랑의 고문역할도 맡고 있다.
“호텔맨이다 보니 호텔의 꽃인 총지배인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지금도 나는 요리사가 아니라 요리를 경영하는 경영인입니다”라고 말하는 이상정 명장. 언젠가는 멋진 조리사 유니폼 대신 요리를 잘 아는 총지배인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영산대학교 한국식품조리학과 강현우 교수 ★
-우리음식 이해시키는 전문가 양성해야-
2003년 9월 비(非)호텔 출신 조리명장이 처음 탄생했다. 주인공은 바로 삼성 에버랜드 조리실을 총괄하고 있던 강현우 실장. 중졸이라는 학력을 극복하고 대한민국 조리명장 4호가 된 강현우 명장은 7년이 지난 지금 영산대학교 한국식품조리학과 교수로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국내에서 유일한 학과라는 자부심을 갖고 우리 전통음식의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또 공부하고 있다. 글/황정일 기자 hji0324@foodbank.co.kr, 사진/Photographer 김봉수

항상 끈기 있게 공부하고 노력하는 신념
강현우 교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바로 ‘우공이산 우보천리(愚公移山 牛步千里)’일듯 하다. 어렸을 때부터 기본적으로 뭐든지 항상 공부하는 자세로 하나하나 만들어가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한평생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리석어 보여도 조금씩 흙을 나르다 보면 산을 옮길 수 있고, 소걸음이 느리다 해도 만 리를 간다’는 의미처럼 강 교수의 인생은 우직하게 끈기를 가진 노력의 삶이었다.
강 교수의 이런 신념은 삼성 에버랜드에서 28년을 근무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직장에서 근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몸담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강 교수는 “물론 치열한 내부 경쟁으로 좌절도 많이 했지만,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언제나 공부해야 한다는 자세로 업무에 임했고 또 어려움을 자기 극복을 위한 계기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2007년에는 위생사 자격증을, 2008년에는 영양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는 등 교수가 된 지금까지도 공부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다.

맛있고 변화에 유연한 음식이 세계화 가능
“우리 음식은 굉장히 좋은 음식”이라고 강조하는 강 교수는 우선 한식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식 세계화 이전에 우리부터 우리 음식과 식문화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것.
강 교수는 “외국인 바이어들이 한국에 왔을 때 한식당을 배제하고 양식당 혹은 일식당으로 안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게 얼마 전까지의 현실”이라며 “지금에서라도 정부에서 한식 세계화를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일본이나 태국에서 자국의 음식을 세계화해 성공한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음식을 다룰 줄 아는 전문인력을 꾸준히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한식을 소개하고 우리의 식문화를 알려야 효과적인 홍보수단이 되며, 정통의 입장에서 표준화를 한다기보다 고객의 입장에서 이뤄진 표준화여야 진정한 세계화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음식의 세계화는 아이디어 싸움으로 먹기 편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관건인데, 그 나라 입맛에 맞도록 변형이 가능하고 현지화 토핑, 소스 변화 등이 유연해야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 양성이 세계화로 가는 지름길
“현재 국내의 외식업계를 보면 음식을 다룰 줄 아는 전문인력을 갖춘 업소가 전체의 20~30%에 불과합니다. 모름지기 전문가라 함은 그 나라 말로 우리 음식을 설명할 수 있고 자기가 만든 음식 역시 그 나라 언어로 이해시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들의 문화와 사고를 모르고 우리의 것만을 주장해서는 세계화를 이룰 수 없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강 교수는 현재 영산대학교 한국식품조리학과를 개선해 나가고 있다. 우리 전통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국내 유일의 학과로서 발효 중심의 기초요리 실습을 바탕으로, 세계화요리 강좌, 창작요리 강좌 등을 개설해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창작요리 강좌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길러주며 세계화요리 강좌를 통해 우리의 전통음식과 자신이 만든 음식을 영어로 소개할 수 있는 훈련을 진행한다.
또 올해에는 조리예술전공 석사과정을 신설해 관심이 뜨겁다. 실기를 포함한 궁중요리, 전통요리 심화과정으로 스타셰프, 기능장 등의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한다.


★ 정영도 명장 ★
-어떤 행위에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조리사에 입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연대회에서 한번쯤 폼 나게 실력을 발휘해 평가받고 싶은 마음일 게다. 조리에 입문한 고등학생부터 전문조리사까지 조리인들이 한 데 모여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펼치는 경연장에서 만난 정영도 명장은 하얀 조리사복을 입고 심사를 하고 있었다. ‘2010 세계관광음식박람회’에서 심사를 하고 있는 정영도 명장을 만났다.

원칙을 지키고 타협하지 않는 완벽주의자
뒤로 말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칼과 옷 매무새조차 반듯한 정영도 조리명장. 외모뿐만 아니라 그의 두 눈빛 또한 날카롭다. 어떤 행위에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원리원칙주의자 정영도 명장. ‘흑은 흑이고 백은 백이다’라고 꼭 짚고 넘어가는 그를 주변 사람들은‘깐깐하다’고 평한다. 그러나 평생 원칙을 지키고 타협을 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그가 있지는 않았을까.
정 명장은 후배들의 실력을 평가하며 문득 자신이 조리사로서 첫 발을 내딛었던 때가 떠올라 감회가 새롭다. 그가 조리에 첫 발을 딛을 때인 1970년만 하더라도 사회분위기나 정서상 조리사가 좋아서 선택하는 것은 만무한 일이었다. 너무 가난하고 먹을 게 없어서 그나마 숙식이 가능한 식당일을 선택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 면에서 조리인들에 대한 위상이 높아진 요즘, 자신이 좋아해 조리를 스스럼없이 택한다는 것 자체가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후배들을 평가해 달라는 부탁에 “거침이 없고, 즐겁게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우리나라 음식이 세계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다”고 말한다. 다만 부족함 없이 자라다 보니 끈기와 집념이 부족해 조금만 힘든 일이 닥쳐도 이겨내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이다.

조리명장 발탁, 땀 흘린 것 인정해 줘 감사해
정영도 명장이 조리사로서 눈을 뜬 것은 1981년 63빌딩에 근무할 당시 일본으로 해외연수를 갔을 때였다. 당시 오오쿠라 호텔에서 연수를 했는데 그 때 일본 요리사들을 보면서 뭔가 다르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가짐을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6개월의 연수기간 동안 정말 열심히 배웠고, 이런 그를 눈여겨본 일본 호텔 측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하기도 했었다고. 성실함이 습관화된 정 명장. 이후에도 그는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조리 이사를 역임할 때까지 40년 세월 동안 휴무도 없이 새벽 6시부터 10시까지 주방을 지켜왔다.
정영도 명장은 2004년도에 조리명장 5호에 올랐다. 조리명장에 발탁된 것은 그가 흘린 땀을 인정해 준 것이기에 감사한 마음이다. 그러나 정부가 단지 조리명장에 선정해 놓았을 뿐 관리를 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매우 아쉬워한다. 어렵게 뽑아 놓았으면 끊임없이 괴롭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정부 주도로 한식 세계화니 뭐니 소리는 요란한데 정작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연륜이 있기에 선정한 조리명장들에게는 자문조차 구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하는 정영도 명장. 명분이든 뭐든 나라에서 얼마의 녹이라도 받는 사람이라면 끊임없이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것이 의무지만 우리 정부는 너무 편하게 놓아준다는 말로 일침을 가한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정영도 명장은 이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언제나 현장이 우선이었기에 어머니와 그리고 처, 자식과 공유하며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하나도 없다고. 현재 짧은 시간이지만 추억 만들기에 들어갔단다.
너무 강직해 때로는 부러지기도 하지만 후배들과 조리인들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정영도 명장. 잠시 휴지기를 거쳐 어느 곳에서 예의 날카로운 섬세함으로 주방을 호령할지 자못 기대가 된다.


★ 서정대학교 호텔조리과 문문술 교수 ★
-대통령의 요리사에서 세계인의 요리사로…-
40년 동안 현장에서 끊임없이 연구, 개발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현재 서정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로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는 문문술 조리명장.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맛을 책임진 청와대 주방책임자로서 외국 국빈 방문 시 우리 음식으로 식단을 개발해 제공하는 등 한식을 세계로 알리는 데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8년 대한민국 조리명장으로 선정되었다. 글/김여진 기자 ozoo@foodbank.co.kr, 사진/이종호 기자

한식 세계화의 핵심은 감칠맛
“보통 사람들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 등 다섯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만 유일하게 한 가지 맛을 더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칠맛’입니다.” 문문술 명장은 우리나라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칠맛이라고 강조한다.
“감칠맛은 발효에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간장, 고추장, 된장 등 오랫동안 묵혀 깊은 맛을 내는 발효식품이 한식의 맛을 좌우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발효식품 외에도 발효함으로써 그 맛을 더해주는 음식은 얼마든지 많다. 냉장에 보관해뒀다 쓰는 밑국물, 미리 배합해두고 쓰는 양념장, 손으로 계량해 체온이 가해진 소금 등 예상치 못한 순간순간에 발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잊혀져가고 있는 전통적인 발효식품들을 다시 발굴, 재현해 그 맛을 이어가는 것이 한식 세계화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문 명장은 발효 외에도 한식을 세계화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또 하나의 조건을 제시했다. 바로 우리나라의 우수한 품질의 식자재로 만든 요리를 알리는 것이다. “한식의 기본은 쌀, 물, 소금입니다. 어떤 쌀과 물, 소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음식의 맛이 달라지죠.” 아무리 뛰어난 요리사도 우리 식자재로 만들지 않으면 우리나라 고유의 감칠맛을 낼 수 없다는 것. 한식 메뉴만 세계화하는데 주력할 것이 아니라 우수한 품질의 우리나라 식자재를 먼저 알려야 진정한 한식 세계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발효식품 표준화로 해외진출
“한식 세계화는 우리 모두의 임무입니다. 특히 현장의 요리사들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외식문화를 선도해야 합니다.” 문 명장은 “한식 세계화를 위해 실제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요리사와 외식업소를 운영하는 경영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며 “새로운 메뉴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직접 경험해 노하우를 터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엔 요리사가 요리만 잘하면 됐지만 오늘날에는 식자재 선별부터 관리, 조리, 접시에 담아내는 것 뿐 아니라 경영까지 전반적으로 총괄할 수 있는 인재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고급화되고 다양화된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키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요리사가 뛰어난 적응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필수가 되었다.
문문술 명장은 또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뛰어난 음식문화인 발효식품을 표준화하는 것이 한식 세계화의 첫걸음”이라 말하며 “요리사와 경영자들은 한식을 표준화시키는 것 뿐 아니라 인공 감미료의 사용을 배제하고 위생적인 조리환경을 조성하는 등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문 명장은 “해외진출을 목표로 천연 감미료와 발효식품을 주테마로 하는 「청류동부뚜막」과 「청류동수라」 브랜드의 메뉴개발에 참여, 한식 세계화를 위해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수영(부산)*
유용한 글 잘 보았습니다 2014-04-16
08: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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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식   에드워드 권(권영민)  [12]
 양승열(목포)
10-09-18 79 789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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